Humans of Kumdo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 과장 유동욱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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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의 상처가 지워지지 않은 1959년, 우리나라는 의료서비스를 국민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로 보고 의료보험제도를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고액의 진료비가 가계에 과도한 부담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 국민이 평소에 보험료를 내고, 필요할 때 의료서비스를 받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선진국에서도 부러워하는 사회보장제도다.
“미국에서 전국민 건강보험 도입은 오랜 과제였습니다. 1903년대 루스벨트부터 1970년대 닉슨,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까지, 전국 건강보험 도입을 위한 입법 노력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헌법의 우산 아래서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각자 선호하는 제도들이 단편적으로 도입되면서 건강보험제도가 분절화되고 복잡해졌습니다.
(중략)
이렇게 분절화된 건강보험제도 사이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2009년 그 수는 미국 인구의 약 15%인 5천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2010년 환자 보호 및 건강보험 적정부담법(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Health Care Act)제정으로 해결되는 듯했지만, 여전히 2천만 명은 지금도 건강보험이 없습니다. “
『미국 건강보험 역사와 헌법』 <유동욱, 바른북스, 24.07.19 >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나라보다 수준 높게 의료분야 혁신을 주도해 온 미국에서 인구의 6분의 1은 건강보험이 없다. 이런 분절과 혁신이 공존하는 미국 의료체계의 원인과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관심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책을 낸 유동욱 사범은 연세대 행정학과 재학 중에 52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현재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에서 서기관으로 근무 중에 있으며 중학교부터 현재까지 검도를 수련하고 있는 검도인이다.
시대적 상황에 맞는 시대적 과제는 항상 있어 왔고 시간이 지난 다음 평가(재평가 포함)라는 순환 고리가 역사에 존재한다. 짧게 근현대사로 본다면 독립, 경제개발, 민주화 등이 시대적 과제였고 지금도 계속해서 평가와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1960년대 열악한 경제여건 속에서 장티푸스, 일본 뇌염, 이질 등 각종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국민에게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 시대적 과제임을 포착한 前세대는 1977년 65세였던 기대수명을 OECD 평균(80.6)보다 높은 82.2세를 現세대에게 전해주었고, 한국은 세계의 모범 사례로 발돋움하였다.
새롭게 변화하는 인구구조와 경제상황에 직면하여 보건복지 분야 정책 실무를 맡고 있는 유동욱 사범을 세종특별시에서 만나보았다.
Q. 안녕하세요? 책을 얘기하듯 쓰시어 읽으면서도 대화하는 듯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자가 앞에 계시니 책에 사인을 해주시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별것 아닙니다. 많은 분 이 알고 계시는 미국의 정체성과 건강보험에 관한 책이고, 관련 내용을 조금 자세히 자료 정리한 것입니다. 미국 정치와 보건정책에 대한 오랜 호기심과 미국 워싱턴 D.C.에서 대학원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들이 의도치 않게 책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곳 세종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Q. 사범님이 쓰신 책 『미국 건강보험 역사와 헌법』을 읽으면서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말로만 듣던 미국에서 병원 한번 가는데 고액이 들고 이조차도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건강보험 제도를 요약해 주신다면요?
책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것인데 분절입니다. 물론 미국도 건강보험체계가 분야별 직업별 나이별로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나라처럼 국가 주도의 단일화 체계가 아니라 운영주체와 이용자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나누어지는 ‘분절성’ 때문에 사각지대가 발생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보험형태로는 ‘고용주 제공 민간 건강보험, 연방행정부 공무원/의회의원의 연방근로자 건강보험, 군 관계자를 위한 트라이케어, 퇴역군인보험, 65세 이상 노년층을 위한 메디케어, 저소득층 등을 위한 메디케이드, 저소득 가정 어린이 건강보험’ 등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분절적인 건강보험이 미국 정체성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정식 명칭은 ‘미합중국’입니다. 영문으로도 America가 아닌 ‘United States of America’입니다. 주(州)들이 모여 만든, 주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국가입니다.
이러한 집합으로서 미국의 정체성 하에서 일률적인 단일 건강보험제도 도입은 쉽지 않습니다. 개인과 주(州)가 각자 고유의 사회제도를 유지하도록 헌법이 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80여 년간 전 국민 건강보험을 도입하기 위해 많은 대통령과 영향력 있는 상·하원 의원들이 시도했으나, 헌법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책은 헌법과 건강보험 개혁의 역사가 어떤 식으로 얽혀 왔는지 보여주고자 합니다.
Q.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받는 지금 의료체계는 이전 시대의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전 국민의 의료혜택으로 건강증진은 물론 삶의 질을 높여 준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의 형성 과정은 어떠 하였는지요?
1960년대부터입니다. 당시 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 전신)는 각종 전염병으로부터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국민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방법을 구상하였고 그 결과 1963년 의료보험법을 제정하고 의료비 부담완화를 설계하였습니다.
1976년까지 직장 및 지역조합 12개의 시범사업에 재정을 지원하면서 의료보험제도 운용 경험을 쌓고 1977년 7월에 본격적인 의료보험 시대를 열었습니다. 1989년에는 500인 이상 사업장을 넘어 농어촌과 도시, 그리고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까지 포괄하는 전 국민 의료체계가 완성되었습니다.
2000년 7월 의약분업 시행과 병행하여 그때까지 분리 운영되었던 직장, 지역, 공무원/교직원 등 3대 의료보험 조합이 국민적 상부상조 연대의 틀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조직과 업무가 통합되면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국민건강보험’이 되었습니다.
Q. 그렇군요. 독일,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은 길게는 100년, 일본은 36년 만에 전 국민 건강보험이 완성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12년 최단기 완성(89년 완성)은 고무적인 일이나 당시와 상황이 많이 변했으니 보완해야 할 것들이 있을 거 같은데요.
정책 실무하면서 더욱 연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반론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제도가 처음 설계되었을 때 상정했던 인구 구조나 경제성장 속도와 지금의 상황이 적지 않게 다르기 때문에, 지속적인 사회적 논의와 제도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도 함께 겪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많은 나라가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고령화된 사회를 처음 마주하고 있습니다.
Q. 빠른 속도의 고령화와 인구 구조 변화는 사회 전반에 걸쳐 숙제를 던져 주었군요. 검도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검도는 언제부터 시작하였는지요?
검도는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신문에 껴 온 전단지를 보시고 해보면 어떠냐 하시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경복궁 부근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기에 집 부근에 있는 만청관에서 검도를 시작하여 고등학교 1학년 때 초단 승단하였습니다. 어머니께서 매달 검도 회비를 봉투에 넣어 주시던 장면이 아직 생생합니다.
처음에는 목검으로 시작하여 10개월 동안 기본만 하다가 호구를 착용하였고 그때 같이 하던 10여 명의 친구들 중에 저하고 한 사람만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군대 전역 후에는 광화문검도관, 행정고시 준비를 위해 신림동 고시촌에 있을 때는 선무관, 신임발령을 받고는 인사동 용무관, 세종으로 옮겨 온 직후에는 대전 백마검도관, 국회에 단기 파견을 나갔을 때는 여의도 진검재, 지금은 세종에서 주 2~3회 정도 검도를 하고 있습니다.
여섯 도장을 거치며, 어느덧 어머니가 주신 용돈 대신 제 월급으로 회비를 내는 나이가 되었는데, 생각해 보니 긴 시간 동안 어머니께 검도하는 모습을 아직도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Q. 하하. 움직이시는 곳마다 도장을 찾으셨으니 검도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우수한 인재들이 경쟁하고 그것도 상대평가인 행정고시를 준비할 때는 검도할 시간을 내지 못했을 것 같은데요?
제가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그것을 만회하려고 고시 준비 초기에는 검도나 체력 관리를 별도로 하지 않고, 삼시 세끼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오로지 책상 앞에만 앉아있던 것 같습니다. 반년 정도 지나자 손에 기력이 없어 글씨가 써지지 않고, 20분 이상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로 탈진했습니다.
더욱이 제가 행시를 볼 때는 1차가 예전의 암기에서 거의 IQ 테스트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암기만 해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출제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평소 공부는 물론 시험보는 당일 컨디션이 무척 중요한데 이런 몽롱한 상태로는 끝까지 완주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검도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바로 신림동에 있는 선무관에 등록하여 그때부터 검도와 공부를 열심히 병행했는데 운 좋게도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검도는 제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는, 페이스 메이커이자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Q. 저도 대체 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것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젊은 중앙부처 관료로서 맡은 업무로도 무척 바쁘셨을 텐데 이렇게 책까지 내시고 그사이 좋아하는 검도를 계속하시고 4단에 승단도 하셨습니다.
그렇네요. 저는 단순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 못 하는데 검도만큼은 꼭 해야지 하는 마음은 늘 있었습니다. 제가 공군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병장 월급이 6만 원이었는데 돈을 조금씩 모아서 14만 원을 만들어 말년 휴가 때 동대문에 있는 체육사에 가서 가장 싼 만번 도복을 큰맘 먹고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전역하면 바로 검도 해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좋았던 것 같습니다.
미국 석사 유학 시절만 빼고 일상에서 검도가 대부분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이번 책을 쓰기 시작한 때가 3단 승단 한 2017년인데 초고를 마무리 한 2023년에 4단 승단했네요. 책 집필에 있어서도 역시 검도가 페이스 메이커이자 친구였습니다.
Q. 하하. 만번 도복을 들고 집에 돌아오는 모습이, 유명한 전후 프랑스 파리에서 바게트 빵을 자랑스럽게 가슴에 안고 가는 소년 사진이 생각납니다. 여러 도장을 다니셨는데 그래도 따라 배우고 싶거나 기억에 남는 지도자가 계신가요?
네. 제가 뵈었던 모든 관장님들이 훌륭하십니다. 그중에서도 군 전역 후 열정적으로 운동했던 때 다녔던 광화문검도관과 박태영 관장님입니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 놓고 할 수 있었을 때라 검도관에서 늦게까지 운동하고 관장님과 퇴근을 같이 할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거리도 멀리 떨어져 있지만 지금도 품위 있고 강한 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커다란 산처럼 느껴지는 박태영 관장님의 중단에 달려들었을 때 제 몸에 부딪혀오는 느낌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말씀보다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업무차 서울에 자주 가지만 일정이 바빠 못 뵈었는데 시간을 내서 한번 운동하러 가야겠습니다.
Q. 네. 연락 주시면 반가워하실 겁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제가 검도를 잘하지 못합니다. 사실, 인터뷰를 할 검력이 되는지 부끄럽기도 합니다. 소위 말하는 푸닥거리는 수준이고 좋아서 하는 것인데, 보시다시피 제 머리가 짧고 해병대 나왔냐는 말을 들을 정도의 인상이다 보니, 주변 분들은 저를 실력자로 오해하십니다. 하하. 그래도 검도는 하면 할수록 오롯이 내 것이 되는 몇 안 되는 것이라 자랑스럽게 할 계획입니다. 주 2~3회 운동 지키려고 합니다.
업무적으로 공복으로서 맡은 소임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쓴 책이 미국 의료체계의 분절인데, 역설적이게도 이 분절을 통합하려는 수많은 연구와 시도가 이루어져 수준 높은 데이터들이 많습니다. 제가 맡은 업무에도 이 양질의 연구자료를 참조하여 업무를 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렇게 멀리 와 주시고 많은 시간 얘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