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 of Kumdo '별이네화원', 영화배우 박성민(6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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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어느 날 수련일지.
영하 20도 인천실내체육관 검도장. 호면 면금 사이로 보이는 상어 눈빛의 범사8단 류기순 선생님. 너무 무섭다. 연속공격 후 다리는 풀리고 죽도를 들 힘이 없어야 ‘그만’을 외치신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수련 후 먼저 샤워하고 나온 선배들이 ‘‘뜨거운 물 받아 놨어~ 하하하.’’ 뜨거운 물 자체가 없다는 걸 안다. 몸의 열기 때문에 찬물을 부으면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결국 수련 때 최대한 체온을 올려놓아야 한다. 심신의 극강의 내공훈련이 오늘도다.
영화 제작 공부를 위해 서울예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후에도 아침저녁 매일같이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도장 바닥을 닦고 깨진 마루를 보수하며 검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던 박성민은 SBS 공채 연기자가 되어 다수의 작품에 주조연으로 출연하는 배우가 되었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 2003, 아담 역》《바람의 파이터, 2004, 료마》《홀리데이, 2006, 프락치》《무방비도시, 2008, 테라지마 스스무》《7급 공무원, 2009, 삼성맨》《기생령, 2011, 장환》
[드라마]
《그대 목소리, 1995 SBS 이준 역 》《임꺽정, 1996 SBS 인종》《미아리 일번지, 1997 SBS, 경민》 《포옹1998 SBS 성필》《연개소문, 2006 SBS 조의대장 용수》《태왕사신기 2007 MBC 사량》《2009 외인구단, MBC 마동탁》《웃어요, 엄마 2010 SBS 구현세》《열애 2013, SBS 최변호사》《삼총사 2014, tvN 노수》
[창작극/ 무용공연 / 뮤지컬] 《수릉, 2002》《돌의 거울, 2005》《별아이, 1996》
“유명해져서 정상에 올라갔으면 밑으로 내려가야 되잖아요. 내려가 있으면서도 옛날의 영광만 추억하면서 지쳐가는 배우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대중적이지 않았고 태양사신기를 끝내고 검색 순위 1, 2위에 오르는 약간의 유명세를 탔지만 그것은 오롯이 제가 열심히 했고 절실해서 얻은 부수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그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멘탈은 올바른 자세와 마음가짐을 가르치신 고 류기순 검도8단 선생님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경쟁이 치열하고 상위 1%가 99%의 수입을 가져가는 연예계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박성민 배우는 가르침을 가치 있게 만드는 제자이다.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운영하게 되어 7전 전부터 작품을 하지 않고 변화된 사업 환경에 맞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 오픈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성민 배우를 일산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Q. 안녕하세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이 이탈리안 음식 전문 레스토랑이라 그런지 식사 시간이 지났지만 식사를 위한 식기들로 세팅이 되어 있어 그나마 대화하기 좋은 구석에 먼저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네. 식사는 하고 오셨지요? 저와 와이프는 이 카페 피자가 맛있어 자주 옵니다. 조용하여 얘기하기도 좋고 사장님도 좋으시고 이 주변의 다른 곳보다 주차하기도 편합니다. 저도 식사를 하고 와서 갈 때 와이프가 좋아하는 피자를 하나 포장해 가려고 합니다. 사범님도 한번 드셔 보세요.
Q. 감사합니다. 17년여 전에 배용준 주연의 드라마 ‘태왕사신기’(MBC, 송지나 극본, 김종학/ 윤상호 연출)’에 실제 검도 5단이 출연한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사진을 찾아보았던 적이 있는데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 뵙게 되니 어제 일처럼 반갑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남자 분들은 바람의 파이터 검객 료마를, 여성 분들은 태왕사신기 백발 사량을 좋아해 주셨습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모티브로 한 <태왕사신기>는 판타지 서사 액션 사극으로 당시 평균 시청률 30%를 기록한 한국형 판타지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현재 활동 중인 유명한 분들이 많이 출연하였고 저는 극 중에서 조연으로 기하(문소리)의 무예 스승인 ‘사량’역을 맡았는데 고맙게도 많은 분이 사량을 좋아해 주시어 당시 인터넷 실검 순위 1위에 ‘박성민’ 2위에 ‘사량’이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연기는 그전부터 했는데 대중에게 저를 조금 알려주는 드라마였습니다.
배역이 얼굴을 가리고 나와서 실검은 1위, 2위였지만 일상 생활하는 데는 아무도 몰라보셔서 편했습니다.
Q. 2009년에는 MBC에서 이현세 원작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드라마로 각색한 ‘2009 외인구단’에서 ‘엄지’ 바라기 마동탁 역할로 주연을 맡으셨습니다.
이 드라마는 26여년전 원작을 재해석하고 실제 야구 경기 재현에 충실하였고 배우들의 연기력도 탄탄하였지만 당시 시대에 맞추어 각색하다 보니 시청률이 높지 않았습니다. 마동탁으로 분한 저는 원작에서는 엄지를 이용하는 이해타산적인 인물인데 각색한 드라마에서는 처음부터 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엄지 바라기였습니다.
국내에서는 흥행이 미비했지만 일본에서는 ‘스트라이크 러브’라는 이름으로 수출되어 기존의 20부작에서 2부가 더해져 22부작이 되었고 인기스포츠인 야구와 한류가 더해져 인기를 끌었습니다.
Q. 아~ 그래서 어느 블로거가 일본에서는 박성민 배우를 한류스타로 대우한다 하였군요. 95년도에 SBS 5기 공채 탤런트로 연기 인생을 시작하였고 그해 ‘그대 목소리(배역 이준)’부터 연개소문, 삼총사, 임꺽정, 바람의 파이터, 홀리데이, 무방비도시, 7급 공무원, 기생령 등 다수 작품에 출연하였는데 요즘은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계신지요?
7년 전부터 작품 활동을 못 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와이프와 회사를 운영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연기할 시간을 내지 못하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때는 저희 회사 아이템이 온라인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이제는 안정기를 지난 변화기를 맞아 새로운 아이템의 오픈을 앞두고 있어 더 바빠졌습니다.
연기자에서 사업하는 사람으로 변화가 왔듯이 일상도 많이 변했습니다. 주택에 살다 보니 전원생활하며 배우관리 못하고 지내고 있는데(개가 많습니다 개똥 치우고 잡초 뽑고^^) 이런 제 모습을 보고 현재 일상 모습을 작품화하면 어떠냐 하는 감독님이 있어 얘기 중에 있습니다. 만약 시나리오가 완성이 되고 제작 윤곽이 나오면 변화된 모습으로 새로운 연기를 하고 싶네요.
Q. 간접 경험이 아닌 체험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연기를 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느낌의 작품이 될 거라 믿습니다. 출연하신 작품 중에서 검도와 관련된 부분이 많던데 검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시작은 89년도입니다. 저는 중학교 때까지 합기도 시범단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유도부 주장과 힘 겨룰 때가 있었는데 상대가 발로 안 되니 저를 잡고 집어 던지는데 제가 그냥 넘어갔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 녀석을 이길 운동을 찾던 중 검도를 배워야겠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일반 도장이 없었고 유일하게 인천체고에서 검도를 하고 있어 그곳에 찾아가 정성대 선생님께 검도를 배우고 싶다고 하니 처음에는 거절하시다가 여러 차례 찾아가니 인천실내체육관 검도장 류기순 범사8단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감수성, 자만감, 상상력 등이 최고조로 달했던 예측 불허의 청소년 시기였는지 제 안에서 검도를 배우겠다는 욕구가 강했고 그것을 감독님이 캐치하셨던거 같습니다. 그게 검도의 시작이에요.
Q. 하하. 질풍노도 시기. 학원 액션 로망을 다룬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느낌이 갑자기 옵니다. 당연히 검도를 배우는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을 거 같은데요.
네. 검도장에서 처음 든 느낌은 이 이상한 분위기는 뭐지 하는 거였습니다. 제 선생님이신 류기순 선생님은 일제시대 경찰이셨고 경찰대회에서 우승하시고 큰 칼을 쓰시는 분인데 호면 사이로 보이는 눈은 상어의 눈빛이고 검도장에 들어서시면 입구부터 압도하는 기운이 엄청났습니다. 또 힘없는 할아버지처럼 걷지만 호구만 쓰시면 절대 밀리지 않는 김봉남 선생님, 당시 국가대표였던 박학진 선생님의 등장은 너무 무서웠습니다. 눈빛이, 하하.
길이 정해졌으니 앞으로만 나갈 것 같았던 질주 본능은 첫날부터 깨지고 운동 전후 마룻바닥을 닦고 깨지면 테이프로 수리하고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까지 운동한 다음에 한겨울에 찬물로 샤워하는 등 정신 수양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같이 수련했던 사람들은 검도대학으로, 경찰로 진출하고 저는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집이 서울이었지만 인천까지 새벽에 검도 저녁에 검도하러 2번 왕복하며 다닌 적도 많습니다. 방학 때는 인천시청 검도부 선수촌 아파트에 선수들과 함께 숙박하며 4년 정도 검도 수련에 정진하였죠.
그렇게 수련하다 보니 제가 보아도 실력이 압축되어 5단 승단도 바로 하게 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훗날 연기할 때 검도, 무도에 관한 배역을 많이 받았습니다.
Q. 설명하신 처음 검도장 분위기는 김수로 배우가 출연한 영화 ‘화산고’가 아닐까 합니다. 하하. 배우가 되셨지만 처음에는 제작, 감독 공부를 위해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고 배우 생활에 검도의 어떤 점이 도움이 되었을까요?
저는 원래 배우가 되거나 배우로서 유명해 지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한의사가 되려고 했으나 예술대학엘 가게 되었고 대학에서는 감독, 제작 부분의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알바를 해보라는 조교의 말에 단역을 했는데 연기도 뻣뻣하고 어색해서 이왕 한 김에 한 번 해보자 하여 연기 관련 책자를 뒤지고 영화진흥공사에 가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연기 공부를 하여 SBS 공채에 합격하여 연기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검도를 통해 배운 정신적인 수양과 내적인 성숙, 노력이 배우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류기순 선생님께서는 검도의 기술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 특히 정신세계를 중요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연개소문이나 태양사신기, 2009 외인구단으로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게 되었을 때도 제가 열심히 하니 남들이 알아주네 하는 정도에서 욕심을 멈추었습니다. 간혹 유명해지고 정상에 올라왔으면 내려오는 것이 당연한데 내려왔으면서도 옛날의 영광만을 추억하면서 망가지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Q. 선생님의 가르침을 흘려듣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든 다음 내 삶에 적용하여 사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보기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배우로서 사업가로서 검도인으로 앞으로 계획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회사 이름 말해도 되나요? 매직픽스라는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고 최근 별이네화원이라는 네이버 온라인 꽃 화원을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인 희망은 집 마당에 나무집 직접 만들어서 검도인 초대 술 한잔 유튜브 찍고 싶습니다.
검도는 음… 박학진 선생님이 호구를 쓸 여유가 안 되면 후리기라도 해서 수련을 이어가라고 하셨고 제가 사는 집이 외곽에 떨어져 있어서 도장에 가긴 어려워 집 안에 검도 수련 시설을 갖추어 놓고 틈틈이 하고 있는데 그거라도 꾸준히 해나가겠습니다. 이렇게 멀리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