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 구석구석 19WKC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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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WKC 방향 설정
승부를 초월해 바르고 정당하게 수준 높은 경기로 정면 대결을 해보고 싶었다. 세계대회 때마다 ‘정면 승부로 일본에 대항하면 안 된다. 우리는 변칙으로 체격과 체력을 이용하여 거리를 주지 않고 많이 움직이다가 예상치 못한 거리에서 뛰어 들어가는 전략을 써야 한다’라는 게 우리나라 검도계의 중론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이 달랐다. 우리는 언제까지 변칙으로만 대응할 것인가. 세계대회 때마다 이런 생각으로 대응한다면 우리는 일본과 경기를 하기 전부터 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와 일본과의 격차를 줄이기는 요원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평소 주위에도 이런 취지의 이야기를 자주 언급해 왔다. 무참히 무너지더라도, 그래서 감독이 비난받더라도 미래를 위해 바른 자세로, 당당하게 기술로 승부를 걸어야 일본과의 격차를 조금씩 줄여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족한 사람에게 감독의 자리가 맡겨졌다. 오랜 시간 동안 생각했던 내 생각을 실천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시도를 해서 잘못되면 심한 비난의 화살이 올 것에 대한 우려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혹독한 심판을 받을지라도 내 생각대로 후회 없이 밀고 나가기로 했다.
훈련 과정과 내용
국가대표선수 후보 훈련이 시작되면서부터 아주 초보적인 사항부터 지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다들 최소한 20년 이상을 수련해 온 선수들에게 죽도 파지법, 중단 겨눔법, 발의 위치나 이동법. 기초 후리기, 연격, 큰 동작 기본 기술 훈련까지 여러 패턴으로 강 훈련을 시켰다. 선수들 사이에서 거부 반응도 느껴졌으나 확신을 갖고 밀고 나갔다.
2023년 4월 18일부터 2023년 8월 23일까지 4개월간 12차에 걸친 국가대표선수 후보 훈련을 마치고 최종 선수선발을 했다. 선발 과정에서 부상으로 제대로 훈련하지 못하고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해 아쉽게 탈락하는 선수도 있었다. 가능성이 있어 보이고 기량이 좋은 선수 중에는 스스로 포기하는 선수도 있어 몹시 아쉬웠다.
최종 선발전을 통과한 10명의 정예 선수가 정해져 2023년 8월 31일부터 2024년 6월 21일까지 10개월간 30차에 걸쳐 강도 높은 본훈련을 했다. 모두 경험이 없는 신예 선수들이었고 비중 있는 선수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점은 기초와 기본이 잘된 선수가 없었다.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기본기술 훈련에 전 훈련의 2/3를 쏟아부었다. 기본기술에서 격자 순간 왼발을 당겨치고 공격 동작에서 죽도를 들어 치고 상체가 먼저 기울어져 나가는 등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이런 상태라면 일본 선수들에게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선수들에게 이 점을 지적했으나 타성에 젖어 있거나 자기가 해온 방식에 대한 자기 확신에, 지도에 대한 거부 반응이 많이 느껴졌다. 해결 방법은 실제 일본 선수들과 직접 부딪혀 보는 것으로 생각했다. 전일본선수권대회를 참관하고 와서는 조금 느낌이 달라진 듯 보였다. 그러나 실전에서 직접 부딪히고 느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되어 일본 전지훈련을 기획했다. 주위 여론이 우리 실력보다 떨어지는 곳으로 가서 일본 선수를 이김으로써 우리 선수들이 자신이 붙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나는 일본 심장부로 들어가 최강의 실력을 갖춘 경시청을 택할 것을 고집했다. 그런데 예산 문제를 비롯한 많은 장애 요소가 있어 매우 어렵게 일본 전지훈련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대표선수에 대한 전일본검도연맹의 기본 방침은 전지훈련을 여자 선수는 받을 수 있으나 남자 선수는 받지 않겠다는 방침이 정해졌다고 해서 난관에 부딪혔다. 그러나 재일 동포로서 일본에 재일대한검도회를 처음 만드셨던 손경익 회장님(7단 교사)과 전 경시청 수석 사범이셨던 엔도 마사아키(遠藤正明 8단 범사) 선생님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어렵게 일본 전지훈련이 성사되었다.
전지훈련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 첫날 두 번의 경기에서 8:0, 9:0으로 참패했다. 나는 조금도 놀라거나 선수들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 한국에서부터 “너희들이 가서 박살 나게 깨져봐야 내 말을 실감할 수 있을 거다”라는 말을 해왔고 충분히 예견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수들은 다음날부터 많이 달라져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상위권 선수들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빨리 현실에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일본에 다녀온 뒤로 내 말이 선수들에게 먹히기 시작했다. 오로지 반듯하게 바로 검선을 들지 않고 최단 거리로 공격해 들어가고, 공격 시점에 왼발을 움직이지 않고 발사하듯 치는 연습 위주로 훈련을 해나갔다. 압박해 들어와 검선이 들리면 가차 없이 밑 손목을 찔러 들어오는 일본 선수들과 같이 우리도 밑 손목 연습도 많이 했다. 머리치기도 오른발을 먼저 밀어 넣으며 죽도를 들지 않고 왼손을 올려붙여 검선을 상대 눈 부위까지 밀고 들어가 검선이 밑에서 떠올라와 머리를 치는 연습도 많이 했다. 상대 죽도의 안 스쳐 머리 치는 연습도 무수히 많이 했다. 겨눔세의 기본이 되고 상대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으며 나의 중심도 잘 지키며 중심을 파고드는 데 기본이 되는 두 손 찌름 연습도 많이 했다.
그러나 수십 년을 자기 방식으로 해온 선수들이기에 본인들이 느끼고 있어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다. 짧은 우리 대표선수 훈련 기간 동안 새로운 방법의 기술이 익숙하게 몸에 붙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선수에 대한 신념
나는 선수들이 주전에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 구분하지 않고 10명의 선수를 마지막 순간까지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기량 향상을 시도했다. 이번 세계대회로 끝나는 게 아니고 차기에도 이 선수들이 주역을 담당할 가능성이 있기에 단 한 명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주전 경쟁을 시키며 안일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하는 데 힘썼다. 훈련 중간에 큰 부상을 두 번이나 당해 결국 주전에서 제외되었던 이영욱 선수도 훈련이 끝날 때까지 주전 선수를 공개하지 않고 기량을 끌어 올렸다. 결국, 훈련 종반인 5월~6월 평가에서 이 선수가 1위를 했다. 의욕을 가지고 매우 성실하고 열심히 훈련해서 따라붙어 1위까지 한 이영욱 선수의 투혼이 고맙고 안타까웠다. 주장인 이지웅 선수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기량 문제나 선수들 통솔 문제에 대해 혼을 많이 냈다. 따라서 나에 대한 반감이 많이 느껴졌으나 나는 선수들에게 욕을 많이 먹는 감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기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선수가 나에 대해 싫은 감정을 품으리라 생각한다.
훈련 완성도에 대한 불안
잘 따라오던 선수들이 훈련 중반기를 돌아 후반기로 넘어오자 흐트러지기 시작함이 감지되었다. 또한, 선수들이 절실히 느껴 잘 따라오던 강조 사항들이 흔들리며 자신의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기미가 보였다. 자극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일본 전지훈련이 절실히 필요해 추진했으나 예산 문제로 무산되고 말았다.
훈련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된다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변환 과정인 과도기에 놓였다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또한, 내가 제일 염려했던 부분은 세계대회라는 큰 대회장에 들어갔을 때 국제무대에 경험이 없는 선수들이라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긴장하여 몸이 굳어지는 것이었다. 막상 경기 현장에서는 훈련한 대로 잘되지는 않았지만, 선수들이 위축되지 않고 용감하게 잘 싸워주었다.
심판 판정의 문제점
항상 문제가 되는 심판의 판정 문제는 정말 심각한 것 같다. 역대 어느 대회에서보다 이번은 정말 너무 노골적으로 일본을 편들었다. 아직 우리의 실력 수준이 일본만 못한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격자한 것은 잡아주고 안 맞은 것은 잡아주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 선수는 안 맞은 것 잡아주고, 우리 선수가 한 격자는 잡아주지 않는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반칙을 주려는 의지를 보이며 경기를 자꾸 중단시켜 경기의 맥을 끊어 우리 선수들의 의기를 꺾으려고 한다. 우리 선수들에게 이런 불공정한 경기 운영을 노골적으로 하는 심판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검도의 발전은 요원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문제점과 미래에 대한 대비
이제 어찌 되었든지 모든 게 끝났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시간이다. 감독직을 수행하며 느낀 것은 선수들이 기초체력이 부족하고 검도의 기초가 너무 부실하다. 기본기도 너무 잘못되어 있다. 우리 지도자들이 평소에 기초와 기본기를 탄탄하게 지도해서 눈앞의 승부보다는 좀 더 여유를 갖고 장기적 안목으로 기본이 잘된 진짜 검도를 잘하는 선수를 길러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점은 대회가 너무 많아 선수들이 지쳐있어서 검도를 제대로 음미하고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기초체력 훈련과 기본기 훈련은 시키지 않고 경기에만 내몰아서 선수들을 너무 혹사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초체력과 기본기만 잘 가르치고 검리를 잘 이해시키면 나머지 응용은 선수들 스스로가 깨우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선수 중에 부상이 없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선수들도 여유를 갖고 지도자들도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지도상 개인적 고충
개인적으로 과연 내 몸이 버텨줘서 마지막까지 해낼 수 있을지 두려움과 매일 대면하면서 이를 악물고 버티며 나와의 싸움을 해나갔던 시간이었다. 최선을 다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후보 훈련 4개월, 정 선수 훈련 10개월 총 14개월의 훈련 과정을 거쳐 세계대회는 마무리되었다. 기저질환으로 5~6년 공백의 시간 다음의 도전이라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다. 매일 육신의 고통과 마주한 투쟁의 시간이었다. 몸의 왼쪽 절반의 무딘 감각과 약해진 근력 때문에 죽도를 놓치기를 몇 번이었던가. 아무리 강한 정신력으로 버티려 해도 신체적 고통에 무너질 뻔한 고비를 넘기기가 얼마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수련 도중 엉덩이를 의자에 대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 나의 지도에 관한 원칙과 신념을 지킬 수 있었다. 내 검도 인생에 마지막 지도자의 길일지 모르기에 공부하고 연구했던 나만의 독창적인 훈련법을 모두 쏟아부었다.
감사한 사람들
잡다한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지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시고 도와주신 박학진 총감독님, 또한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세심한 배려와 활기찬 훈련 분위기 조성과 선수들 후원을 위해 헌신적으로 수고해 준 이강호 코치께 감사드린다. 또한, 이안수 단장님께도 큰 은혜를 입었다. 단장님께서는 회사 경영에 바쁘신 가운데에도 몇 번을 연수원 훈련 현장을 방문해 선수들과 함께 대련도 하시며 격려해 주시고, 수시로 선수들의 간식을 부족함 없이 지원해 주셨으며 밀라노에서의 연습 현장과 경기 현장에서도 늘 선수들과 호흡을 같이 해 주셔 한 팀임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바쁘신 병원 일도 내팽개치고 선수들의 주치의를 자청해 주신 H-dream 정형외과 강기만 원장님과 일산병원 재활의학과 김형섭 선생님의 노고와 통역을 해주며 선수들을 위해 헌신해 준 성용은 교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더욱 감동을 주는 것은 훈련 전 기간을 통해 아무런 조건도 보상도 없이 순수하게 물심양면으로 마음을 다해 후원해 주신 많은 검도인 여러분께 머리 숙여 큰절을 올린다.
맺는말
마지막으로 결과가 매우 아쉽고 개운하지 못했지만, 그 아쉬움은 후임 감독에게 넘기고 나의 역할을 마무리하면서 부족한 사람을 발탁해 주시고 믿어주신 전영술 선생님과 이를 승인해 주셔서 귀히 써주신 김용경 회장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개정된 심판 규정 등 국제연맹에 대한 정보와 선수들에게 확신과 자신감을 주는 귀한 말씀으로 늘 격려해 주시고 배려해 주셨던 서병윤 선생님께도 큰 도움을 받았음에 거듭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