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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 구석구석 삼무(三無), 삼다(三多)의 섬으로의 검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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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사람을 설레게 한다 

 

혹자는 말한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움직이며 하는 독서라고. 독서 ,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 책에 쓰인 문장들을 사전적문언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작가의 의도나 사상, 신념 등을 넘어 독자가 자기 나름대로 풀어내며 소화하고 전이하며 사색하는 자신만의 식역으로 이끄는 과정이자 단계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독서가 정적이라면 여행은 다만 동적일 뿐, 학습사색감상 등의 본질은 독서와 다름없다. 그러나 여행은 독서와 달리 우리를 심적으로 매우 설레게 한다. 일단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의 이동은 호기심, 탐구심, 모험심에 더해 때로는 두려움까지 일게 한다. 물론 그 두려움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하기에 기꺼이 설렘 가득한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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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이라는 독서에 특정한 의미를 지닌 어휘가 곁들여질 때 그것이 갖는 파장적 의미는 더욱 증폭된다, 예컨대, 검도 여행이 그렇다. 이는 단순한 여행이 아닌 검의 이법의 수련에 의한 인간 형성의 길이라는 숭고한 이념을 갖는 검도 수련의 일면으로서의 여행이기에, 좀 더 숙연해지는 - 다이내믹한 독서라 할 수 있다. 단순한 여행으로서 매조지되는 게 아닌 여정 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기록해보고자 하는 수도수련으로서의 검도 기행(紀行)일 때는 더욱 마음이 장중해지기 때문이다.

 

가자, 제주도 - 검고 짙푸른 섬으로

 

불가에선 상호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갖는다고 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깊거늘, 하물며 쉽지 않은 곳으로 건너와 검도 수련을 지속하다 억겁의 인연을 만들고 고향으로 회귀한 남다른 검우가 있다. 제주 토박이로서 제주 삼무검도관에서 수련하는 강수사범(이하 강 사범, 5)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수년 전, 강 사범은 아들이 대전의 모 대학으로 유학을 오자 지극한 모성애가 발로돼 함께 대전으로 건너왔다. 그런데, 아들 뒷바라지에 바쁜 어머니이기에 앞서 검도에 심취됐던 그녀는 뭍에서도 수련의 끈을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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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등록한 게 대전의 갈마검도관(관장 이춘형, 8, 교사)이다. 갈마관에서 수련을 지속하던 강 사범은 아들이 학업을 마치자 당연하지만 아쉽게도 고향으로 회귀한다. 어쩔 수 없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의 법칙이다. 이러니 강 사범과 갈마관 검우들과의 인연은 홑겁의 인연이라기보단 영겁의 인연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깊은 인연의 끈으로 제주로 돌아간 강 사범이 이춘형 선생을 비롯한 갈마관의 교검지우들을 제주로 초청한다.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 건전한 일탈(?)을 꿈꾸던 검우들은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누가, 언제, 어떻게 갔다 올 것인가 등등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설왕설래 끝에 이춘형 관장, 류효승(대전광역시검도회장, 6, 연사), 한승훈(갈마검우회장, 4), 이상원(필자, 대전광역시검도회 부회장, 5), 홍영진(갈마검우회 총무, 5) 등 다섯 명의 사내들이 20221221일부터 1223일까지 23일간 삼무검도관을 방문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본다. 이렇게 잊지 못할 제주도 검도 여행의 서막이 오른다.

   

도장에 술독이 있다?

 

1221, 출발 첫날.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필자를 제외하고 이춘형 선생을 비롯한 네 명은 청주공항에서 비슷한 시각에 출발했다. 서울이든 청주든 출발 당시의 날씨는 꽤나 쾌청했다. 그런데 이후 벌어질 꿈에도 생각지 못할 황당한 일의 전조랄까, 공항마다 비행기 출발이 지연된다. 청주 출발 일행보다 약 30분 정도 먼저 출발해야 할 필자의 비행기는 김포에서 약 10여 분 늦게 출발했는데 청주공항에선 30여 분이나 지연 출발한다는 연락이 왔다. 이래저래 우리 일행은 예정보다 한 시간 가까이 늦게 제주공항에서 합류해 차를 타고 삼무검도관으로 직행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진군남47-2에 자리잡은 삼무검도관(이하 검도관’, 관장 송정곤, 6) )은 삼다(三多)와 삼무(三無)로 유명한 제주도의 대표 공인도장이다. 특이한 게, 다른 도장에서는 보기 힘든 300여 평의 대지 위에 다소 일본식 풍으로 지어진 도장 부지 한 켠에 삼무검우회 사무실 간판이 버젓이 달린 별도의 가건물(콘테이너 하우스)이 가설돼 있다는 것. 그 앞, 바비큐 시설을 갖춘 야외 테이블 옆엔 호텔업을 하는 고기삼무검우회장이 기증한 벌크 업(bulking up)된 생맥주 주입기(술독?)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땀 흘려 수련 후 옹기종기 모여 시원한 생맥주 한 잔씩을 걸칠 수 있는 꿈의 도장이 바로 이런 곳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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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 도장에 도착한 일행은 관원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교검에 들어갔다. 아니, 본격적인 교검에 들어가기 전 8단 이춘형 선생의 검도 이론 및 실기 지도가 선행됐다. 8단 고단자 선생님의 개별 지도나, 멀리 중앙연수원의 강사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기가 쉽지 않은 탓인지 수련에 동참한 20여 명의 성인 관원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새로 바뀐 연격 요령, 심판법, 기본동작 등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연습했다. 우리 일행들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춘 제주의 검객들과 3~4분씩 상호 대련한 후 비무 소감을 교환하며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교검 후 이야기를 나누면서 꽤 검력이 쌓인 수십 명의 성인 관원들이 결성한 삼무검우회를 주축으로 매우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도장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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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 달, 종잡을 수 없는 겨울의 심술

 

2일차. 전날 저녁 수련을 마친 후 검도관 관원들과 반주를 곁들여 식사를 한 탓인지 약간의 숙취를 느끼며 눈을 떴다. 숙소 인근의 해장국집에서 간단히 조식 후 한승훈 갈마검우회장의 제안으로 애월읍 소재 노티드(Knotted)’ 카페에 들러 풍미 좋은 도넛을 먹으며 해경을 즐겼다. 그런 후 ‘1100도로를 종단해 서귀포 쪽 바다 풍경을 즐기고자 차의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날씨가 좀 수상했다. 제주도 저지대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금세 도로에 눈이 쌓이며 강풍까지 겹쳤다. 기온이 급격히 저하되며 얼어붙은 좁은 도로에 차들이 밀리자 곧바로 거북이걸음이 되며 도로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앞선 차량들이 하나둘씩 방향을 전환해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하자 우리도 낌새를 채고 유턴해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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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관광이나 운동은 뒷전이고 먹방으로 돌변한다. 숙소에서 뒹굴다 일단 점심 식사는 해야겠기에 류효승 대전광역시검도회장의 제안으로 서문공설시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시장 내 눈에 띄는 정육점에서 제주 흑돼지를 푸짐하게 산 후 정육점과 연계된 식당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필자가 제주도뿐 아니라 전국의 내로라하는 흑돼지식당을 많이 다녀봤지만, 이날 섭식한 돼지고기 숯불구이는 당연, 최고의 맛이었다. 물론 날씨가 추운데다 호젓한 시골풍 식당인 탓도 있겟지만 잘 구워진 돼지고기와 어울린 술맛 역시 별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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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점심 식사 후 이상기후로 밖으로 나돌아다닐 처지가 못 돼 곧바로 숙소에 돌아와 TV를 켰다. 이런, 제주를 포함한 전국 대다수 공항에서 폭설로 인해 여객기들이 결항되고 있다는 뉴스가 자막으로 뜬다. 설마, 내일은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숙소에서 뒤숭숭하게 낮잠을 잔 후 저녁 식사 후 검도관에 들렀다. 이날의 주 커리큘럼은 검도의 본 및 승단 심사 시 유의사항. 이춘형 선생이 관원들을 대상으로 원 포인트 레슨을 실시한 후 가볍게 호구를 착용하고 교검의 시간을 가졌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비극의 시작

 

1223, 3일차.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제주에서 출발하는 모든 국내선 항공편과 선박편이 끊겼다. 이때부터 일행의 고민이 시작된다. 하루 뒤인 1224일은 성탄절 전야, 그 이튿날은 성탄절. 일행 중 성탄절 전야나 성탄절의 중요한 행사에 꼭 참여해야 할 독실한 천주교, 기독교 신자들이 있었다. 성탄절 전야제 불참은 그렇다 치더라도 성탄절 미사(예배) 및 행사에는 반드시 참여해야 할 절박한 심정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못 느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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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랴, 오늘은 꼼짝없이 붙들려 제주도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아내의 문자 메시지가 다소 위안을 주었다. 잠시 눈발과 바람이 그치고 구름이 걷히는가 싶다가 다시 강풍과 함께 진눈깨비가 휘날리는 현상이 반복되니 도통 밖에 나가 관광할 엄두가 안 난다. 덕분에 건장한 남자 다섯 명이 숙소에서 빈둥대다 때가 되면 운동 대신 술독에 빠져든다. 이날은 사흘 연속 눈이 온 탓인지 도로에 차들도 잘 보이질 않았다. 검도관 측에 문의를 해보니 관원들도 외출을 삼가는 눈치라 도장도 휴무해야 할 것 같다는 뉘앙스의 답변이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반주를 곁들여 만찬을 즐겼다. 제주에서 최후의 만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각자도생의 길 - 집으로, 집으로!

 

1224, 4일차. 제주에서 발이 묶인 수많은 내도객(來島客)들이 제주를 벗어나고자 아귀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다행이랄까 오후 늦게(17:00) 제주발 목포행 쾌속선이 운항을 개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류효승 대전광역시검도회장의 긴급 제안이 들어왔다. 일단 배를 이용해 육지로 가자. 그런 후 택시를 타고 대전으로 가면 될 것 아니냐?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다. , 필자 한 사람을 제외하고... 필자는 청주공항에서 출발했던 다른 일행과 달리 사정상 김포공항에서 출발한데다 김포공항 국내선 제2 공용주차장에 승용차를 두고 왔다. 다행히 필자 역시 하루 늦기는 하지만 25일 오전에 제주공항에서 출발하는 김포공항행 비행기를 예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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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25일 아침 중요한 행사에 반드시 참석해야 할 일행이 있었기 때문에 필자를 제외한 네 명은 이날 저녁 배편으로 목포로 갔다. 물론 밤늦은 시간에 건장한 남자 네 명이 수십만 원을 들여 택시를 타고 목포에서 대전으로 가야 했기에 이들이 들고 온 호구와 죽도는 택배로 별도 배송해야 했지만... 목포로 떠나는 이들을 제주항에서 전송한 후 혼자 남겨진 필자는 고독했다. 하여, 필자는 일본 배우 마쓰시게 유타카(松重 豊)’가 주연한 고독한 미식가의 흉내를 내기로 결심했다. 근데, 빌린 차량을 반납한데다 악천후에 빙판이 된 도로 탓인지 택시들이 눈에 띄지 않아 점찍은 식당에 가기가 힘들었다. 근사한 곳을 찾아 홀로 맛깔스런 식사를 하려던 계획을 접고 하릴없이 숙소 근처에서 혼술로 고독을 달랬다. 23일로 계획했던 검도 여행, 45일로 늘어나면서 본의 아니게 낮술과 혼술이 범벅된 우스꽝스런 여정이 됐다. 다만, 잊지 못할 경험으로 추억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내 생애에 끼어든 짭조름한 양념이라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