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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판없는 도복 착용의 의미

  글쓴이 : 신승호
  작성일 : 2002-04-19
  조회수 : 17475


지금 세대의 검도인은 검도가 성숙되기 위한 초석이 되어야...


신 승 호(대학검도연맹 경기이사, 검도7단)


  해방 이후 국내 검도인들에 의해 검도가 다시 도입되고 대한검도회가 창립된지 어언 50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동안 검도1세대 선생님들이 검도에 대한 뜨거운 열정 하나만으로 남이 알아주지도 않는 외롭고 고난의 길을 걸어오시며 국내에 검도를 보급하셨고 오늘날의 검도는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약적으로 성장되었습니다. 이제 현 시점은 검도가 여태까지의 성장을 바탕으로 앞으로 성숙의 단계로 접어드느냐, 아니면 성장을 멈추고 쇠퇴의 길로 접어드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지금 세대의 검도인들은 검도를 국내에 도입한 선각자들의 열정을 이어 받아 검도를 몇 단계 더 성숙시켜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무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즉, 검도수련을 열심히 하고 검도 경기에서 요구하는 경기력을 향상시켜 세계 최강이 되는 것, 검도의 장비를 개선ㆍ발전시키는 것, 검도의 규칙이나 심판법을 합리적으로 개선시키는 것, 일본에서 경기화 된 검도 못지 않게 우리 고유의 검도 역사나 검법 등을 발굴하고 재현하는 것, 검도의 저변인구를 다양한 계층으로 확산시키는 것 등등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본에서 경기화, 스포츠화 된 검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경기화된 검도를 우리가 수련한다고 해서 검도의 모든 것을 일본이 하는 그대로 답습하고 따라하라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검도를 하는 국가, 또는 지역에 따라 얼마든지 제각기 검도의 대중화, 세계화를 위해서 다양한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 번에 요판 있는 도복(이하 하카마도복)을 금지하고 벨트식 도복을 권장하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라 하겠습니다.
   많은 검도인들이 피부로 느껴왔지만 검도가 국내에서 대중화되는데 있어 가장 큰 장애요인 중의 하나가 일본운동이라는 인식입니다. 유도나 바둑 등도 일본에서 만들어졌으나 이들에 비해 유독 검도가 일본것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받고 있는 것은 검도복장이 갖는 이미지 역할도 큰 몫을 하고 있음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특히, 도복 바지로 사용하고 있는 하카마는 일본의 전통의상을 그대로 검도복으로 적용시킨 것입니다. 도복의 기능성은 차치하고 과연 우리가 일본의 전통의상인 하카마를 그대로 입고 검도를 할 필요성이 있겠는가는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혹자는 검도가 일본에서 만들어졌으니까 일본식 도복을 입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합니다. 물론 국제검도연맹의 룰에 검도경기를 할 시에는 반드시 요판 있는 도복, 즉 하카마도복을 착용해야 한다라고 규정이 되어 있다면 이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따라야 할 사항입니다. 그러나 경기규칙에 하카마도복을 착용해야 한다는 조항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는 검도경기에 있어서 도복은 핵심사항이 아니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모든 스포츠경기에는 "핵심사항"과 "주변사항"이 있습니다. 핵심사항이란 그 경기가 성립되기 위하여 필수적인 요소들로서 곧 승패법, 장비 등을 말하며 당연히 모든 것이 규칙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주변사항이란 경기에 수반되는 것들이지만 핵심사항과는 달리 경기에 반영되지 않는 것들로 예를 들어, 도복이나 경기 시작 전에 선수들이 모여서 "화이팅"을 외치는 의식 등이 해당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변사항은 팀이나 국가의 문화, 환경 등에 따라 다른 행위가 이루어져도 무방한 것들입니다.
   이러한 맥락으로 도복 역시 우리나라의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개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혹자는 도복을 우리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일본에서 경기화 된 검도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검도경기에서 핵심사항 즉, "3판 2선승제"의 판정법을 "5판 3선승제"로 바꾼다거나 죽도를 현 규정보다 더 긴 것을 사용하는 등 새로운 경기룰을 만들어 진행한다면 이는 일본에서 경기화 된 검도를 부정하는 것이라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핵심사항이 아닌 주변사항을 바꾼다고 해서 일본에서 경기화된 검도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잉 해석이요, 아주 고정된 관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검도복의 개선은 검도경기 주변의 문화를 한국의 실정에 맞게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지 검도경기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카마도복에서 요판을 떼어내고 벨트를 달았다고 해서 무엇이 그렇게 달라지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벨트식도복이 기능성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점차적으로 보완되어야 하겠지만 우리 검도인들이 요판을 떼어낸 도복을 착용한 것 자체가 우리 검도계에서 근 50년동안 타성적으로 고착되어왔던 관행을 떼어내는 역사적이고 의미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판 없는 도복착용의 전면적인 실시에 대한 결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동안 대학검도연맹에서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했지만 4년간 실시를 해왔고, 대한검도회 심의위원회에서 오랜 기간동안 논의를 거친 끝에 결정된 것이다.
   심의위원회의 구성원을 보면 검도를 일평생 동안 해오시며 그야말로 우리나라에 검도를 도입하신 1세대 선생님들이 대부분입니다. 어쩌면 이 선생님들이야말로 우리 검도 2세대들보다 하카마도복이 훨씬 더 몸의 일부처럼 느끼실 선생님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위를 앞세워 하카마도복을 고집하지 않고 벨트식 도복착용을 결정하신 것은 그야말로 검도가 한국에서 더욱 더 성숙할 수 있는 길을 손수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 것은 위에서 하니까 밑에서 무조건 따라오라는 개념과는 다른 것입니다. 오히려 하카마도복의 폐지는 우리 2세대들로부터 먼저 나왔어야 할 의견이 아니었나 하고 반성도 해야할 것입니다.
   대한검도회는 검도의 대중화, 세계화라는 목표와 철학을 가지고 많은 사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은 인력과 빠듯한 재정 구조하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대한검도회의 목표와 철학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다소 강제성을 부여하다보니 당혹스럽고, 불편하고, 경제적인 손실이 따른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30년 가까이 습관이 되었던 하카마도복을 입지 않으려니 때로는 불편하고 나도 모르게 연습하러 갈 때 하카마도복을 챙겨가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것은 일시적이며 검도발전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매우 사소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검도를 경기화 시킨 일본은 검도의 세계화를 위해서 그렇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네들이 만든 무도이자 스포츠인 검도를 한치의 변형없이 세계에 전파하는, 즉 일본 고유의 문화 전파에만 힘을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이 하는 대로 따라만 간다면 이는 경기화 된 검도뿐만이 아니라 검도와 관련된 모든 것(복장, 연습법, 용어, 예법 등)들을 일본식으로 영원히 따라간다는 의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동안 검도 1세대 선생님들은 검도를 도입하여 국내에 전파하느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여과시킬 것은 시키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검도2세대들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의 후대들이 보다 보편화되고 세계화된 검도를 수련할 수 있도록 검도의 장비, 도복, 심판법 등에 대해서 꾸준히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검도의 개선은 일본만이 해야하고 우리는 따라만 가야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쪼록 우리 검도 2세대들이 검도가 성숙의 단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초석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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