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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검도를 왜 할까?

  글쓴이 : 김명서
  작성일 : 2016-01-22
  조회수 : 1800

나는 검도를 왜 할까?


제가 검도를 시작 한 것이 지난 2001년 1월 2일인가 3일인가로 기억됩니다. 제 나이가 쉰네 살 때였습니다. 특별히 운동 신경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아니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둔한 편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그런 제가 검도 수련을 하는 있는 저 스스로를 돌아볼 때에 이게 제대로 하는 짓인지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드는 적도 가끔 있습니다.

1968년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서 하숙 생활을 하면서 막연히 검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고등학교 때 친구와 같이 부모님 몰래 도장에 다녔던 추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도장에서는 태권도와 유도와 검도를 같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매일 밤마다 땀에 절어오는 저를 보고 부모님이 의심하여 추궁을 하시는 통에 저는 실토를 하고 그 이상 더는 도장을 다니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서울에서 검도 도장을 쉽게 찾을 수 없었고 막연히 성균관 대학에서 검도를 한다는 풍문은 듣고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생활인으로서 결혼도 하고 제 일도 하다 보니 어느덧 제 나이가 쉰네 살이 된 셈입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제 눈에 검도 도장의 간판이 보였습니다. 조그만 흥분을 느끼면서 도장엘 다녀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그 도장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마침 한 겨울이었는데 새벽에 도장엘 가니 정말 온기라고는 한 점 없이 혹한의 마루 바닥이었습니다. 몇 번 마루를 밟고 왔다갔다 하면 발이 꽁꽁 얼었습니다. 저는 그때 검도는 혹한을 이겨내는 극기의 수련이니까 당연히 그렇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관원 수도 적었고 대부분 저처럼 나이가 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도 별로 불평없이 수련을 하니 저 또한 그런 분위기 속에 묻어갔던 것입니다.

검도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J시 검도회 주체 검도 시합을 하게 되어 나갔습니다. 시합장에 서니 정말 사방이 하얗게 변하고 아랫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단지 상대가 움직이면 저도 같이 움직여서 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계속 상호 타격이 되었고 한 순간 제가 멍하는 순간 퇴격 머리를 맞아버렸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뭔가 이론이 서지 않으면 잘 행동을 안 하는 타입입니다. 예를 들어 골프를 시작하면 필드에 나가 공을 치는 것보다는 골프에 관한 이론서를 사다가 읽습니다. 그런 성정이라 일본에서 발행하는『검도 일본』잡지를 2004년부터 정기 구독을 하면서 재미 삼아 번역을 하여 인터넷에 싣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조금은 소문이 나서 2007년 가을인가 통영에 계시는 J사범이 제가 일하는 장소까지 굴―제 아내는 그때 먹어본 굴이 이제껏 먹어본 굴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고 하면서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을 선물로 가지고 오셔서 자신이 참가하고 있는 어떤 모임에 들어오기를 권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였는데 그 모임의 주체는 일본에서 검도를 배워온 30대 초반의 청년이었습니다. 그 분도 J사범이었는데 그의 검도에 대한 이론은 나이는 비록 젊지만 정말 머리를 숙일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참으로 배울 점이 많은 모임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임이란 여러 사람이 참여하다 보니 설왕설래가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오래 지속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몇 번인가 이합집산이 있었으나 저는 그 젊은 사범의 검도에 대한 이론의 해박함에 매료되어 계속 같이 하다가 2014년에는 저도 인연이 닿지 않아서 그만 두었습니다. 얼마 전에 그가 일본에서 6단을 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검도 잡지를 보다가 거합도에 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2004년에 서울 잠실에 있는 어떤 분이 일본 거합도 5단이라고 하여서 우여곡절 끝에 연결이 되어서 일주일에 한번 매주 J시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서 수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3개월쯤 하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2007년 여름에 교수ㆍ의사 검도회에서 히라카와(平川信夫) 선생님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인검도 클럽’의 초정으로 일본에 갔습니다. 저녁에는 회식에서 사토 히로노부(佐藤博信) 선생님의 얼굴을 뵈었는데 지금도 끝이 힘차게 뻗고 있던 긴 흰 눈썹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간 김에 일본에 있는 노마(野間) 도장을 아침에 방문했습니다. 노마 도장의 목조 건물이 그 해를 마지막으로 없어지고 새롭게 현대식으로 짓는다고 해서 의미가 깊었습니다. 노후한 마루 바닥의 한쪽에는 기둥 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었고 그 위를 둘러서 메주를 달아 놓은 듯이 호면과 갑상, 갑을 죽 달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둥에 연해서 마루로 된 복도가 붙어 있었고 또 그 옆으로는 목조의 문들이 있어서 문에 붙은 창 너머로 마당이 보였습니다.

지금도 벽에 걸린 붓글씨로 ‘첫칼을 중요시 하고 연격을 열심히 하라’는 뜻의 글씨가 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토모카와(友川紘一) 선생님이 주인장 격이 되어서 지도를 하셨고 수련이 끝나면 선생님들 앞에서 모여 앉아 수련에 대한 의문점을 얘기하기도 하고 덕담을 나누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토모카와 선생님이 우리 보고 농담을 하면서 빙긋이 웃으셨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왜 자꾸 ‘모리 모리”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리(森)는 바깥에 있는데.......“

또 한 번은 2008년 여름에 제가 다니는 도장에서 단체로 쿠마모토로 여행을 갔습니다. 큐슈학원을 방문하여 같이 수련을 했습니다. 그때 학생들의 질서정연한 모습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 학생이 감독에게 가서 꿇어 안고는 뭐라 얘기하더니만 조용히 물러나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제가 보니 그것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말 같았습니다.

쿠마모토의 카메이(亀井徹) 선생님의 개인 도장을 방문했습니다. 도장이 사방이 트여진 목조 건물로서 격식이 있고 한눈에 봐도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날 카메이 선생님이 사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하고 아마도 다른 8단 선생님들에게 부탁을 했는지 몇 분의 8단 선생님들이 참석했습니다. 전일본선수권 대회에서 2위 입상을 한 적이 있는 후루사와 츠네오미(古澤庸臣) 선수도 보였습니다. 수련이 끝나고 우리는 호구를 싸들고 기다리고 있던 버스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들의 칼을 받아주셨던 8단 선생님들이 우리 뒤를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좀 전에 인사를 했는데 웬일인가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버스에 타고 떠날 때까지 도열하여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마음에 조그만 감동을 주었습니다.

지금 저는 검도 4단이지만 사실은 제 단에 대해서 콤플렉스를 갖고 있습니다. 2010년에 4단 승단 심사를 보았는데 본국검법도 실수를 하였고 본도, 대련도 별로 시원치 않았는데도 합격을 했습니다. 제가 생각해 보아도―물론 감사한 마음이야 있지만―제 나이를 감안하여 준 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속으로는 제 자신이 떳떳한 마음이 들지 않고 항상 빚진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4단 승단 후에 별다른 목표도 없이―왜냐하면 더 이상의 승단은 욕심을 내지 말자는 편이었으니까요―지내는데 2012년 연말에 같은 도장에 다니는 A사범이 구제 강습회를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고 딱히 가야할 동기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왜 그때 갔는지 이유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아무튼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서 놀란 것은 저 같이 실력이 형편없는 4단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분들이 눈에 심심치 않게 띄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안심도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기분이 묘했습니다.

이제까지 음성에서 하는 강습회는 네 번 참석하여 5단 승단 심사의 자격은 있지만 솔직한 말로 자신도 없고 두렵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렵게 여겨지는 것이 심판법입니다. 다른 것은 어쨌든 머리를 들이밀고 해보기라도 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지만 심판은 실제로 도장에서도 경험하기 어렵고 해서 오리엔테이션이 잘 안 서기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검도 말고도 두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런 제가 요즘은 제 인생에서 마지막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검도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 자신에 대해 실망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열정을 기울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데도 도무지 발전이 없어서 어떤 때는 답답하기도 하고 이 나이에 이런 짓을 괜히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남 앞에 떳떳이 내놓을 만한 실력이 아니다 보니 자신감도 없습니다. 도장에서도 제 나이 또래가 별로 없고 그렇다고 남에게 존경받을 만한 실력을 겸비한 것도 아니니까 젊은 사람들로부터 경이원지(敬而遠之)를 당하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저 나름대로 검도에 대해서 책을 읽어보고 검도 현실에 접해 보면서 몇 가지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대한 검도회가 애를 쓰는 것은 마음으로 전해져 옵니다. 일본에서 시작된 검도를 하면서 일본이라는 나라와 우리나라와의 미묘한 관계에 의해 여러 가지 반응들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예컨대, 요판을 없앤다든지, 손쿄를 하지 않는다든지, 국제 시합에서 유독 흰 도복을 착용한다든지, 본국검법과 조선세법을 발굴하는 등이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 것에 대해 시비가 있을 수는 있으나 별로 큰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검도를 시작하고 일본 잡지를 읽으면서 지금까지 의문이 생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타격부위에 대한 명칭에 관한 것입니다. 타격부위는 아시다시피 머리, 손목, 허리, 찌름이 있습니다. 허리와 찌름은 별로 논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손목은 일본말로 ‘테쿠비(手首)’라고 따로 있습니다. 일본 사람은 우리가 손목이라는 부위를 ‘테쿠비’라고 하지 않고 ‘코테(小手)’라고 합니다. ‘코테’는 우리 말로 하면 전박(前膊)(forearm), 즉 팔뚝 부위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왜 손목이라고 하는지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타격부위는 손목이 아니라 팔뚝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렇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타격하는 머리 부분은 다른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머리를 치면서 ‘머리’라고 소리 지르지만 일본 사람은 우리 말 머리에 해당하는 ‘아타마 혹은 토(頭)‘라고 하지 않고 ’멘(面)‘이라고 합니다. ’멘‘은 우리 말로 ’얼굴‘입니다. 즉 일본 검사들은 우리가 머리를 칠 때 머리 부위 즉 두정부(頭頂部) 앞쪽의 머리 부분을 치는 것이 아니라 얼굴 즉 머리와 이마의 경계부분 아래의 이마를 향해서 타격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검도의 초보자인 제가 보아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마 부위 즉 얼굴을 치는 것과 두정부 앞쪽의 머리 부분을 칠 때는 타격 방법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어디를 치든 한판이 되면 되지 따질 게 무엇이냐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말입니다.

이른바 머리를 치게 되면 타격이 머리에 도달하는 순간 오른팔과 왼팔과 죽도가 거의 180도를 이룰 것입니다. 타격하고 나서 오른 손목과 왼손목은 볼록렌즈처럼 위로 볼록한 각도를 만듭니다. 타격하는 순간부터 손잡이를 왼손은 위로 당기고, 오른손은 아래로 누르면서 던져야 합니다. 골프로 치면 코킹(cocking)을 빨리 푼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마를 치게 되면 죽도가 이마에 닿는 순간 죽도와 팔이 180도가 아니라 거의 135도를 만드는 것을 제가 Harry Yoshida라는 분의 유튜브에서 강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검도 연사 6단이고 선수 출신도 아니고 단지 검도를 좋아하는 분 같았습니다. ‘검도 승단심사 일발 합격 강좌, 심사원이 요구하는 타돌이라는 것은?’라는 유튜브에서 그는 ‘멘(面)’치기를 설명할 때 좌상단의 예를 들었습니다. 그 유명한 치바(千葉仁) 선생님의 좌상단을 가지고 말했습니다만, 좌상단으로 머리(일본말로는 멘)를 칠 때는 왼손을 인후 부위까지 ‘끌고 내려오고’(골프로 치면 코킹을 미리 풀지 않고) 그 다음에 검선이 앞으로 달려나가서 ‘멘’을 가격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팔과 죽도는 평행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충 135도 정도를 각도를 이뤘습니다. 다시 말해 이때는 머리를 칠 때와는 달리 타격 후에 오른손목과 왼손목이 오목렌즈처럼 아래로 오목한 각도를 이룹니다

마침『일본 검도』2014년 11월호에 이노우에 요시히코(井上義彦)―얼마 전의 잡지에서 이분이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봤습니다만―범사 8단의 글, ‘남겨야 하는 검도형의 진리’에서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머리 위(頭上)에서가 아니고, 앞이마 부분(前額部)을 친다
「정면(正面)을 친다」라고 말하면, 도법이라면 앞이마 부분을 치는 것이 상식으로, 왼손이 내려가고 손목의 각도도 겨눔자세와 거의 같게 된다. 그런데「검도의 습관 때문에 검도형에서도 두상(頭頂部)를 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라고 이노우에 범사는 지적한다. 왼손이 올라가고 검선을 눌러 넣듯이 손목을 구부리는 타격방법은 검도형에 비추어 보아도「검의 이법」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검도일본』2014년 11월호 21페이지)

이노우에 범사는 우리가 흔히 검도형 1본에서 선도가 머리를 칠 때 크게 호를 그리듯이 하라고 하지 않고 처음에 ‘왼손이 내려가고’ 그 다음에 손목의 각도가 겨눔자세와 거의 같게 된다고 했습니다. 즉 왼손이 내려가고 그 다음에 검선이 앞으로 달려가서 격자부위를 맞히는 것이 됩니다.

『검도일본』2010년 8월호에 보면 ‘「머리」인가「얼굴」인가!? 검도의 기술, 전통을 뒤흔드는「노리는 곳」’라는 제목 하에 오카다(岡田守正)(尙道館 관장) 교사 7단이 머리를 칠 것인가 얼굴을 칠 것인가에 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일본에서도 타돌 부위에 대해서 논란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된 원인의 하나로는 대체로 머리를 노리는 곳이「이마」라고 하는 것보다「두정부」가 좋다고 하는 곡해가 넓어진 데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타돌 부위가 머리(頭)이라면 그 명칭도「토(頭)」가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정착한 명칭은「멘(面)」인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이라고 해도 서로 상반된 견해를 가지는 것을 봅니다. 일본의 스미 마사타케(角正武) 범사 8단의 ‘검도의 수순’이라는 DVD를 보면 앞에서 말한 두 분과는 다른 이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원통을 가볍게 가지고 있지만 원통의 높이는 머리 높이로 고정하고 있습니다. 이 머리 높이에 있는 물체에 대해서 낮은 곳에서 작은 원을 그리고 이렇게 맞히면 이렇게 보이듯이 맞은 원통이 대각선으로 움직입니다.
그 다음에는 왼손과 오른손을 올려서 내려칩니다. 그러면 이 원통은 아래로 떨어집니다.

다시 말해 스미 범사는 얼굴을 치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원통이라면 위에서 아래로 쳐내린다고 했습니다.

저의 실력으로는 두 가지 방법―머리 위를 치는 것과 앞이마 부분을 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말하는 ‘멘(面)’을 한국에서는 ‘얼굴’이라고 하지 않고 왜 ‘머리’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얼굴과 머리는 타격부위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조심스럽지만 제 경험을 말해 보고 싶습니다. 죽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손잡이를 자신의 인후 부위까지 끌어내리고 나서 타격대의 손목을 칠 때의 느낌입니다. 손잡이가 인후 부에 도달했을 때부터는 검선은 중력에 의해 아래로 죽도의 무게로 달려 내려갑니다. 마치 깊은 웅덩이에 몸이 허공에서 푹 꺼지는 느낌입니다. 손목의 스냅을 하고 말고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이른바 ‘사에(冴え=산뜻함)‘가 있는 타돌이 아닌가 하고 상상해 보았습니다. 반면에 머리 위에 있는 손잡이를 타격 순간부터 양손의 소지(小指)를 가지고 잡아당기면 검선이 팔과 함께 죽 아래로 내려오다가 손목 부위에서 강제적으로 손목의 스냅을 주어 타돌하게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머리치기(실은 멘치기)도 손목에 비해 거리가 짧다뿐이지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두 가지를 비교하면 어떤 것이 바른 것인지는 사실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두세 달 전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Harry Yoshida라는 분의 지론에 공감하여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의 검풍(?)을 바꾸었습니다. 어차피 제가 검도 선수도 아닌 바에야 굳이 사시멘(刺し面) 혹은 작은 머리를 사용하여 득점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검리에 맞는 큰 동작으로 일도양단의 타격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검으로 대결한다면 사시멘이라는 것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검도를 왜 할까요? 노년의 건강을 위해서? 수동적인 제 마음 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는 공격성을 검도로 표출하기 위해서? 운동하고 나서 샤워를 하고 나올 때의 시원함을 위해서? 상대를 이기는 쾌감을 위해서?......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겠으나 얼마 전에『검도일본』2014년 7월 호에서 야노 히로시(矢野博志) 범사 8단과 타키자와 켄지(滝澤建治) 교사 8단이 말하는 것을 보자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검도는 결국 내면의 문제다.’ 물론 기본적인 기능이 갖추어져야 할 수 있는 경지이기는 합니다만 그 말을 보자 제 자신의 검도의 목표가 서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저는 검선일여(劍禪一如)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오가와 츄타로(小川忠太郞) 9단 선생님이 쓴『백회 계고(百回 稽古)』를 읽고 번역하면서 검과 선에 대해서 유난히 강조하는 것 같았지만 그게 제게는 절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전혀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矢野博志 범사와 滝澤建治 교사가 말한 ‘검도는 내면의 문제’라는 말과 ‘검선일여’라는 말이 만나면서 제게 희미하지만 지평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선일여’라는 말로 검색해보니 이런 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검선일여의 경지에 도달해 무도류(無刀流)의 시조가 된 일본의 야마오카 텟슈(山岡鐵周) 거사는 “‘본래 한 물건도 없다(本來無一物)’라는 도리를 진실로 체득한다면 새파란 칼날이 몸에 육박해 오는 때에도 동요함 없이 대처할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에도 시대의 선승 다쿠앙 호소(沢庵宗彭)는 ‘검선일여’ 즉 검과 선은 같은 것이라고 했다.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호승심(好勝心)을 버리고 무아(無我)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어떠한 일에도 흔들림 없는 강인한 정신을 얻기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검도 수련자는 선수행자와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참선이라는 참구(參究)의 목표는 ‘분별심이 끊어지고 절대적인 존재와 일체가 되어 즉 자타가 하나가 되어 대자유를 얻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원리를 검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몸으로 깨달아 삶에서 구현한다는 것은 지난하다고 말합니다.

검선일여라는 주제는 제게는 너무 큰 목표이고 제 평생에 이룰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믿지만 비록 제가 의도한 것의 0.001%라도 도달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백전백승의 비법을 터득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론도 잘 모릅니다. 선(禪)수행자의 지관타좌(只管打坐)라는 말처럼 다만 그저 바른 자세로 호흡만 집중하고 경구의혹(驚懼疑惑)이라는 의식을 벗어버리고 할 수만 있다면 무심(無心)으로 사신(捨身)의 연습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검도를 다만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문제로 접근하여 가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상대가 저보다 스피드가 빠르거나 기술이 낫거나 혹은 내공이 우월하여 제가 얻어맞으면 그 또한 도리가 없습니다.

길을 물어물어서 가다 보면 오르막 길도 내리막 길도 있을 것이고 어느 한 순간은 수류화개(水流花開)의 계곡에서 파란 하늘에 둥실 떠 있는 구름도 보면서 쉬어도 갈 것입니다. 비록 그 시간이 그렇게 길게 남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제 검도 인생에서 새해를 맞이하여 무언가 정리를 하고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고 싶어서 저의 소회를 적어봅니다.(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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